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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승만 대통령이 기호 1번이에요. 당연히 (당선)되는 겁니다

 

<‘이승만 죽이기’ 60여 년, ‘팩트를 지어내는 역사가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역사학 교수의 조선일보 2024211일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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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1교시] Full.ver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한 유명 교수(역사학자)2년 전 어느 대중 강연에서 1952년 최초의 국민 직선제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에 문맹률이 높은데 누가 기호 1번 차지하느냐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이승만 대통령이 기호 1번이에요. 당연히 (당선)되는 겁니다. 이건 뭐, 기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강한 권력을 차지하게 되는 거고요······.”

 

이 역사학자는 이날 강의에서 김구도 김규식도 없는 1952년 상황에서 국민이 아는 정치인이라곤 이승만이 유일했으며, 전쟁 중이라 다수 국민은 정치엔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유권자 대부분은 문맹이어서 누구든 기호 1번을 달고 나오면 당선되는 게 당연했다는 주장을 마구 펼쳐댔다. 이승만이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이유는 이승만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 승인도 아니라 국민적 무관심과 무지의 결과였다는 기괴한 해석이다. “독재자 이승만이 비민주적 속임수로 우매한 대중을 기만하여 독재 권력을 연장했다는 86세대 좌편향 학자들의 전형적인 논법인데, 과연 학술적 타당성이 있을까?

 

서울대학교 유명 역사학자의 발언이라 무조건 믿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세상에는 정치 편향에 휘둘려 현실을 왜곡하고 문서를 곡해하는 역사학자들이 수두룩하다. 역사 서술에서 악마는 잠복한 바이러스처럼 언제나 디테일 속에 똬리 틀고 있다. 그 악마를 찾아내기가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인터넷 검색창에 2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라는 검색어만 넣고 클릭하면 관련 사실이 줄줄이 굴비처럼 엮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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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85일 전쟁 와중에 치러진 제2대 대한민국 정·부통령 선거에서 기호 1번을 달고 출마한 대통령 후보는 이승만이 아니라 조봉암(曺奉岩, 1898-1959)이었다. 이승만은 기호 2번이었다. 또한 전쟁 상황이었음에도 전국 투표율은 88.09%에 달했다.

사상 처음 치러지는 직선제 대통령 선거에 국민 다수는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증명하는 놀라운 수치다. 그 결과 74.61%라는 실로 무서운 득표율을 과시하며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시 선거 관련 자료를 조금만 들춰보면 누구나 위의 객관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번을 달고 출마한 조봉암의 선거 포스터도 수없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대중 앞에서 왼손 검지로 1자까지 만들어 보이면서 이승만이 기호 1번을 달고 나와 문맹의 유권자들은 무조건 1번을 찍었다고 단언하고 있는 저 역사학자는 대체 왜, 무슨 생각으로 그런 뻔한 거짓말을 하는가? 무엇을 바라고, 어떤 정치적 목적으로 그런 가당찮은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가? 직접 확인도 하지 않고 지레짐작을 객관적 사실처럼 꾸며서 말했다면 용서받기 힘든 학문적 부정직(academic dishonesty)이다. 이승만을 폄훼하기 위해 고의로 그런 거짓을 말했다면 이념적 인격 살해이며 정치적 역사 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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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은 1952년 제2대 대통령 선거에서 기호 1번을 달고 출마했다.

 

 

 

 

 

 

 

<역사학자의 거짓말을 폭로한 영화감독>

 

이 역사학자의 터무니없는 오류를 내게 알려준 인물은 최근 전국에서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 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다. 20234월 중순 김덕영 감독은 캐나다에 있는 나와의 첫 전화 통화에서 건국 전쟁의 기획 의도를 소상히 알린 후 말했다. 저 역사학자의 말이 진짜인지 검증하기 위해 “1950년대 선거 포스터를 샅샅이 찾아봤는데, 이승만 대통령은 단 한 번도 기호 1번을 달고 대선에 출마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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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제3대 정·부통령 선거 벽보와 1960년 제4대 정·부통령 선거 벽보. 1956년 이승만은 기호 2번으로, 1960년에는 기호 3번으로 출마했다

 

김덕영 감독이 조사한 바와 같이 1952년 기호 2번으로 출마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그 이후 대선에서도 기호 1번으로 출마한 적이 없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기호 2번이었고, 1960년 선거에서는 기호 3번을 달고 있었다. 반복하지만, 1952년 선거는 물론, 그 이후의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승만은 단 한 번도 기호 1번을 달고 출마한 적이 없다.

 

김덕영 감독은 역사를 연구하고 가르쳐서 봉급 받아 먹고사는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는 과거의 문서와 영상을 발굴해서 대중의 눈앞에 생생하게 과거의 실상을 재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전문 역사학자의 과거사 왜곡을 밝혀내고 엉터리 해석을 물리치는 힘은 모순과 부조리를 거부하는 시민의 상식과 거짓을 물리치려는 인간의 정직함에서 나온다.

 

누구든 진실 규명의 의지를 품고 집요하게 역사적 기초 사료를 발굴하고 탐구하면 역사학자의 왜곡과 궤변을 오로지 팩트(fact)에 근거해서 허물어 버릴 수 있다. 역사학은 절대로 역사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사회가 눈을 부릅뜨고 정치화된 역사학계의 상습적 역사 왜곡을 낱낱이 밝혀나갈 때, 대한민국 현대사를 보는 국민의 시각이 바로잡힐 수 있다. 대중 강연에서 이승만이 기호 1번을 달고 나와서 문맹의 유권자들에게 몰표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역사학자가 자라나는 청소년의 머릿속에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주는 이 현실을 이제는 근본적으로 고치고 바꿀 때가 됐다.

 

김영삼 정권 때의 역사 바로 세우기대신 지금은 현실 바로 세우기를 위해서 역사를 제대로 탐구해야 할 때다. 1980년대 이래로 디테일에 악마를 숨긴 섬뜩한 거짓의 역사관이 대한민국이란 열린 사회의 공론장을 점령하고 오염시켜 왔기 때문이다. 한편 건국 전쟁10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8만 명을 넘기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 /이신영 기자>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김덕영 감독의 작가정신과 예술혼이 거짓 뉴스와 허위 정보를 마구 엮어서 일방적으로 이승만 악인전(惡人傳)을 집필해 온 역사학계의 고루한 시대착오와 부족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 어떤 역사가의 전문지식도 정직한 시민의 상식을 이길 수 없다. 하물며 기호 2번을 1번이라 조작하고, 88.09% 투표율을 보인 유권자를 무관심한 군중이라 둘러대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74.61%의 유권자를 닥치고 1번만 찍는 문맹의 무지렁이로 몰아가는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의 주체임에랴.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3/0003816085?sid=103

 

https://www.chosun.com/opinion/column/2024/02/10/BRAP6IYRMBEXHGGSWK4PSRLXSU/?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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