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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역사학 교수의 조선일보 2024년 2월11일자 칼럼
중국을 대국으로 숭상하는 오랜 전통의 관성은 실로 강력하여 일제에 강점당해 식민 지배를 겪고 난 후에도 한반도 지식인들은 중국을 향한 존경과 흠모를 극복하지 못했다. 중국 마오쩌둥의 대규모 파병으로 파멸을 면한 북한 김일성은 마오쩌둥의 “자력갱생”을 그대로 베껴서 “주체사상”을 만들고는 마오쩌둥식 대중 동원과 대민 지배를 그대로 흉내 내었던 마오쩌둥의 ‘꼬맹이 동생’(little brother)이었다. 김일성의 남침으로 3년의 참혹한 전쟁을 겪었던 대한민국의 지식인들도 중국을 숭모한 점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1970~80년대 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들이 사상의 스승으로 떠받든 저널리스트 리영희의 중국 관련 서적들은 소위 “진보세력”의 의식을 지배하는 운동권의 바이블이 되었다. 문제는 리영희의 저서들이 마오쩌둥을 미화하고 칭송하는 중국공산당 선전물을 방불케 한다는 점에 있다.
1960~70년대 한국 대다수 언론은 외신을 통해서 중국 문화혁명에 관한 꽤 상세하고 객관적이며 정확한 보도를 일상적으로 전하고 있었다. 한국의 대중은 날마다 신문만 봐도 문화혁명의 참혹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리영희의 저서는 그러한 한국 사회에 중국공산당의 선전물을 버젓이 옮겨와선 “문혁의 실상”이라며 마오쩌둥의 인격 숭배까지 정당화하는 지적 착오를 범했다. 리영희의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은 희대의 독재자 마오쩌둥을 존경하는 시대착오와 최악의 전체주의 파시스트 김일성을 “위대한 수령”으로 섬기는 정신착란을 연출했다. 그렇다면 리영희는 왜 마오쩌둥을 극찬했는가? 그 이념의 뿌리가 구한말 위정척사파에서 이어지는 친중 사대주의의 황무지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을 숭상하고 북한을 옹호하는 이들은 예외 없이 이승만에 대한 혐오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이승만은 중국 문명에서 벗어나 중화 중심주의적 세계관을 타파하고 구미(歐美) 모델의 근대화를 지향했다. 이승만은 해방공간의 극한적 좌우익 대립 속에서도 대한민국이라는 자유민주주의 신생국을 건립하여 미국 주도의 자유적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에 편입시킨 한국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마오쩌둥을 흠모하고 김일성을 존숭했던 세력은 반미와 반자유로 무장한 시대착오적 이념의 일탈자들이었다. 선명한 반공의 기치를 내걸고 제네바 협정과 인권의 가치를 내세워 2만 6천 명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은 시대착오적 이념의 일탈자들에게 불구대천의 “원쑤”가 되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들은 이승만이 세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이념 공세를 가해 왔다.
<리영희의 악의적 오역, 반 대한민국 세력의 정치전 무기로>
그런 악의적 이념 공세 중에서도 특히 리영희가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관련해서 유엔 총회의 결정문을 왜곡한 사례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역사학의 타산지석이 되어야 마땅하다. 1948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 제195호(Ⅲ) 2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국어 번역: “2.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감시하고 협의할 수 있었으며 한국인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한반도 내의 지역에서 유효한 지배권과 관할권을 가진 합법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점, 또 이 정부는 임시위원회의 감시 아래서 한반도 그 지역의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의사가 적법하게 표현된 선거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 유일의 그러한 (합법) 정부라는 점을 선언한다.”
영어 원문: “2.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리영희는 대한민국이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가 표현된 공정한 선거에 의해서 성립된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는 유엔 총회의 결의문을 “대한민국은 38선 이남에 수립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악의적으로 오역했다. 그의 오역은 대한민국의 국제법적 합법성과 헌법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학계, 언론계, 정계, 문화계의 반대한민국 세력에 의해서 끊임없이 악용되었다. 리영희는 왜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를 “38선 이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오역했을까? 몰라서 틀렸나? 알면서 왜곡했나?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거쳐 8월 15일 공식적으로 수립되었다. 중앙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5월 10일 총선거는 전국 만 21세 이상 남녀 총유권자 813만여 명 중에서 785만 명(96.4%)이 선거인 등록을 했고, 그중 95.5%가 투표를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선거는 그렇게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나라 세우기’의 열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명실공히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였다. 그날 선출된 198명의 국회의원은 5월 31일 제헌의회를 개원했으며, 7월 17일에는 드디어 대한민국 헌법이 공표됐다. 그 헌법에 따라 국회의원의 간접선거로 제1대 대통령 이승만이 선출되었다. 요컨대 한국 헌정사 최초의 ‘민주 정권’은 1948년 수립된 바로 그 정부였다.” (송재윤, “’1948년 정부’가 대한민국 첫 민주정부다,” 朝鮮 칼럼, 2022년 3월 8일).
마오쩌둥을 흠모하고 경애하여 숱한 가짜 뉴스와 허위 정보를 엮어서 그의 공적을 미화하고 그의 인격을 찬양했던 리영희는 1948년 유엔의 감시하에서 국민 총선거를 거쳐 국민 절대다수의 승인을 얻어서 수립된 대한민국의 국가로서의 정통성을 흔쾌히 인정할 수 없었다.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를 “38선 이남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왜곡한 그의 의도는 진정 무엇이었을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대한민국만큼 합법적이라 주장하고 싶었음일까? 리영희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뿌리 깊은 그의 친중주의가 반미주의와 동전의 양면처럼 딱 붙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친중·반미는 곧 반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