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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승만은 거짓말이다] #6. 런승만은 거짓말이다
6.25 직후 '이승만 라디오 연설문' 보니…"서울을 지켜라"는 말 없어
(뉴데일리 조광형 기자 2024-02-15)
그동안 이승만 전 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직후 서울시민들에게 "서울은 안전하니 생업에 종사하라"는 녹음 연설을 방송한 뒤 정작 본인은 대전으로 피신했다는 게 마치 학계의 정설처럼 전해져 왔으나, 이는 왜곡과 날조로 구성된 '거짓 역사'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영화 건국전쟁 속 이승만과 김구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류석춘 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말 중에 '런승만'이라는 말이 있다"며 "이는 이 전 대통령이 6.25전쟁 때 국민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뜻으로, 서울시민들에게는 남아줄 것을 호소하면서 정작 자신은 지방으로 피난을 갔다는 주장"이라고 언급했다.
류 전 교수는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와 같은 내용의 연설을 한 사실이 없다"며 "세간에 퍼진 라디오 연설 내용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 전 교수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위급한 전쟁 상황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군사원조가 오고 있는 만큼 좀 더 힘을 내 달라'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만 전했을 뿐 '서울시민 여러분은 안심하고 서울을 지켜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말도 안 되는 이런 황당한 거짓말을 학생뿐 아니라 사회 지도층도 습관적으로 이야기한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류 전 교수는 "특히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2012년 '독부 이승만 평전'을 펴내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을 삽입해 '런승만' 논란을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안심하고 서울 지켜달라'는 말한 적 없어
류 전 교수에 따르면 김 전 관장은 이 책에서 "이승만은 '서울시민 여러분, 안심하고 서울을 지키시오. 적은 패주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과 함께 서울에 머물 것입니다. 국군의 총반격으로 적은 퇴각 중입니다. 이 기회에 우리 국군은 적을 압록강까지 추격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달성하고야 말 것입니다'라는 거짓 녹음 연설만 라디오 방송이 되풀이하도록 해놓고 시민들이야 죽든 말든 내버려둔 채 자신과 그 수족들, 그리고 정부 각료들만 줄행랑을 놓은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김 전 관장은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인민군을 격퇴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대통령의 녹음 연설이 계속 방송되는 가운데 채병덕 참모총장이 북한의 탱크가 서울에 진입하기 전에 유일한 한강다리인 한강철교를 폭파하라고 최창식 공병감에게 지시해, 28일 새벽 2시 30분경 국군이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던 4000여 명의 시민이 현장에서 폭사하거나 물에 빠져 죽고 서울시민들의 피난길을 막아버렸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책 내용을 소개한 류 전 교수는 "기습남침 전쟁이 벌어진 지 이틀 반이 지난 1950년 6월 27일 밤 10시에 방송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은 어느 한마디, 어느 한 군데 시비를 걸데 없는 전쟁 최고 지도자의 완벽한 연설"이라며 "최고 책임자로서의 고뇌는 물론, 주어진 상황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 자신의 선택과 노력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군인과 국민의 협조를 당부하는 호소력이 단연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어 "실제 이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문을 보면 김 전 관장이 거론한 방송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강조한 류 전 교수는 "그의 설명과 주장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을 아무런 근거 없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선전선동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류 전 교수는 당시 이 전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미국 CIA 소속 해외방송정보국(FBIS: 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이 감청해 작성한 영문기록이 있다며 3페이지 분량의 연설문 사본을 전격 공개했다.
류 전 교수가 공개한 연설문에서 이 전 대통령은 "지금, 우리의 원수들은 사방에서 중무장한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군함을 몰고 와서 우리를 옥죄고 있다. 우리 군경은 이 어려움을 뒤집기 위해 모든 방향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우고 있다"며 (어제) 의정부 일대에서는 적군이 중무장한 수십 대의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왔는데, 우리 군인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아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했으나, 나중에는 침략하는 도로에 지뢰를 매설해 탱크를 격파하는 시도를 했다"는 등 지금까지의 전황을 상세히 전했다.
이어 이 같은 위기 상황을 미국의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대통령에게도 알려 군사원조를 부탁한 사실을 밝힌 이 전 대통령은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중대한 작전이 준비되고 있고, 충분한 원조가 가는 중'이라는 맥아더 장군의 전보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은 "현재 상황에서 국민이 피난을 떠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보다 더 유력한 나라들도 이미 공산당 세력 수중에 넘어갔고, 일부는 넘어가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우리는 공산당의 학살을 막을 수 있다. 우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우리 군대가 강력하게 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적과 힘차게 싸우고 있는 우리 군과 경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특별히 의정부 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용감히 싸우는 군인들에게는 더욱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덧붙였다.
◆'민간인 800명 희생설'도 거짓
류 전 교수는 라디오 연설 내용뿐 아니라 '국군이 한강철교를 폭파하는 바람에 다리를 건너던 다수의 민간인이 사망했다'는 김 전 관장의 주장 역시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류 전 교수는 "1950년 6월 27일 오후 10시 대국민 방송을 마친 이 전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인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다리 폭파 소식을 접해야 했다"며 "한강다리 폭파를 둘러싼 논란은 신기철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팀장이 2014년 출판한 '국민은 적이 아니다(헤르츠나인)' 53-42쪽에 잘 정리돼 있다"고 소개했다.
류 전 교수는 "김덕영 감독('건국전쟁' 연출)에 따르면 신 전 팀장은 2014년 인권평화연구소 소장 시절 처음으로 '민간인 800명 희생설'을 제기했으나 스스로 살펴도 그 근거가 너무도 허접해 사실을 따지게 됐다고 한다"며 "그 결과 2014년 출판한 책에서는 팩트에 근거한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류 전 교수는 앞서 신 전 팀장은 '한 언론사 특파원'이 '어느 군사고문단 군인의 증언'이라고 소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800명 사망설'을 제기했으나, "그런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류 전 교수는 "당시 현장에 있던 군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폭파 직전까지 피난민들은 인도교 근처에 설치된 '부교'를 이용해 이동 중이었다"며 "이미 한강 인도교가 헌병에 의해서 이중 삼중으로 통제된 상태였기 때문에 당연히 인도교에 민간인이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고 단정했다.
게다가 '폭파 명령자'는 당시 참모총장 채병덕이었다고 강조한 류 전 교수는 "결론적으로 한강 인도교 민간인 사망설을 처음 제기했던 신 전 팀장 역시 자신의 오류를 인정, 연구 결과에 대한 보완 작업을 통해 2016년 '민간인 사망자가 없었다'고 수정했다"고 밝혔다.
류 전 교수는 "미국 해병대 자료와 신 전 팀장의 책 등을 종합하면 당시 우리 군대가 다리 위 민간인 통행을 금지하자, 피난민들은 다리 밑의 교각을 따라 부유잔교를 설치해 군인의 검문을 받은 후 강을 건너고 있었다"며 "그리고 부유잔교는 28일 새벽 2시 30분 한강다리 폭파 작전의 결과로 모두 파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폭파 직전, 2개의 경인철교 사이의 부교로 피난민들이 한강을 건너고 있는 사진을 소개한 류 전 교수는 "폭파로 상판이 붕괴되면서 교각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 때문에 때맞춰 그 순간 다리를 건너는 극소수 민간 피난민들이 다치거나 죽었을 수는 있지만 이는 극소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한강다리 폭파로 희생된 사람 중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경찰 77명 외에는 없다'는 김 감독의 주장을 인용했다.
다음은 류 전 교수가 공개한 이 전 대통령의 대국민 라디오 연설 전문(1950년 6월 27일).
내가 지난 대여섯 달 동안 계속해서 자랑스럽게 말한 것은 미국의 군사상 원조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내가 그것이 올 것을 믿고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주정치 나라에서 그것은 (군사적 원조가 오는 것은) 시간이 걸리고, 나는 상당한 시간 동안 침묵해야만 했습니다. 내가 한 말이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원수들은 사방에서 중무장한 비행기와 탱크 그리고 군함을 몰고 와서 우리를 옥죄고 있습니다. 우리 군경은 이 어려움을 뒤집기 위해 모든 방향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성공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어제) 의정부 일대에서는 적군이 중무장한 수십 대의 탱크를 앞세워 밀고 내려왔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전혀 준비되지 않아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했으나, 나중에는 침략하는 도로에 지뢰를 매설해 탱크를 격파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적군은 탱크를 세우고 내려서 지뢰를 제거하며 계속 전진했습니다. 우리 군인들은 지뢰를 치우는 적군을 소총으로 저격하고자 했으나, 장거리 소총으로 무장한 적군에 반해 우리 군인들은 그런 무기가 없어 대적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무기도 없이 적과 대적하기 어려웠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우리 군인들은 맨손으로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결국 적군의 선봉대는 서울 외곽 수 십리 지점까지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리는 약 400 미터 거리).
이런 상황을 보고 나는 워싱턴과 동경에 밤과 이른 새벽 시간에 전보와 전화로 연락을 취해 맥아더 장군과 통화를 했고, (워싱턴 주재 우리 대사를 통해) 트루먼 대통령과도 통화를 했습니다. 내가 말한 바는 적이 우리 대문을 침입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기를 주면 우리는 미국, 일본, 한국에 있는 우리의 미국 친구들과 함께 국경을 방어할 수 있습니다. 나는 트루먼에게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미국 대통령 승인을 얻은 1,000만 달러 원조가 우리가 이와 같은 비상사태를 맞이하고 있을 때 도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그 사이에 무초 대사의 노력도 있고 하여 (우리보다 더 긴급히 워싱턴과 도쿄에 이 상황을 호소하여...), 오늘 오후에는 맥아더 장군이 내게 보낸 전보에서 중요한 언급을 하였기에, 이를 동포에게 급히 알리고자 그동안 침묵하고 있던 바를 모두 철파하고, 이 기쁜 소식을 방송하는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전보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중대한 작전이 준비되고 있고, 충분한 원조가 가는 중입니다"). 맥아더의 서명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긴급정보 보고는 한국에 대한 원조가 공군과 해군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원조는 오직 38선 이남을 방어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오늘 오후에는 전폭기를 보내서 침략자들을 격파하고, 전투기로는 탱크를 공격한다고 합니다. 또한 처치 (Church) 장군은 즉시 동경에서 서울로 와 우리 국방 군사고문으로 일하면서 도울 것이고, 고급 참모들도 (여럿이 오고, 군사 원조물자도 지금 오는 중이며, 또한 계속해서 올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국민이 피난을 떠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보다 더 유력한 나라들도 이미 공산당 세력 수중에 넘어갔고, 일부는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공산당의 학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군대가 강력하게 싸워야 합니다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여기서 (서쪽 옹진반도부터 동해까지 38선 전 지역 그리고 동해의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는 지역까지 적과 힘차게 싸우고 있는 우리 군과 경찰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별히, 의정부 지역에서) 무기도 없이 용감히 싸우는 군인들에게는 더욱 고맙습니다.
적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용기, 힘, 결단력을 가지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어야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지원을 기대하고, 남북한의 통일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나는 모든 시민들이 전쟁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면서 용기와 애국심을 발휘하여 차분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Rhee's Plea for US Arms Aid and Korean War Strategy
소스 1개
이 문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1950년 6월 27일 연설 내용과 미국의 대한 군사 지원 상황을 주로 다룹니다. 연설은 미국의 무기 지원에 대한 감사와 공산주의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한국군의 어려운 상황과 적군의 침공에 대해 설명합니다. 또한, 맥아더 장군의 지원 약속과 1천만 달러의 군사 원조 승인 소식을 포함하여, 미국으로부터의 군사 원조가 곧 시작될 것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문서는 한국 전쟁 초기의 절박한 상황과 한국-미국 간의 군사 협력을 보여줍니다.
영어 문장 추출
제공된 자료에서 추출한 영어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 "... what I have continuously and proudly said on five or six occasions in the past is that military aid is coming from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 have said so because I believed and knew that it was coming. However, in a democracy this takes time and for quite a considerable time I have remained silent, for it appeared for a time as if what I said were fruitless."
• "Now our enemies are closing in on us from all directions, employing heavy arms, including airplanes, tanks, and warships. Braving the adverse conditions, our armed forces and police are fighting (successfully) in all directions."
• "(Yesterday) in the Uijongbu area the enemy forces were surging forward, (under cover of) heavy arms, including scores of tanks. At first our forces, unprepared as they were, did not know what to do to cope with the situation but subsequently they attempted to destroy the tanks by burying land mines in their path. However, the enemy men halted their tanks, got out, removed the land mines, and surged forward as before. Our forces attempted to check them by shooting with rifles; those who were engaged in removing the land mines. However, while the enemy carried long-range rifles, our men did not have such arms."
• "It was thus difficult to meet the enemy forces arm-for-arm, but our men even fought empty-handed. Nevertheless, the enemy forces (kept up their advances) and reached a point only a few scores of li (one Korean li approximately 400 meters--Ed.) from the outskirts of Seoul."
• "Seeing the situation, I got in touch with Washington and Tokyo by telegram and telephone at night and in the early hours of the morning, and spoke to General MacArthur, as well as to President Truman (through our ambassador to Washington). What I said is, when our enemy is knocking at our doors, our comrades-in-arms cannot sit back cooly."
• "Give us arms and we, together with American friends in America, Japan, and Korea, will be able to hold our national border defenses. I appealed to Truman that (it is regrettable) that the 10 million dollar aid, which was passed the American Congress and which was sanctioned by the American President, had not yet arrived here when we are facing such an emergency."
• "Meanwhile, Ambassador Muccio (pleaded with Washington and Tokyo regarding the urgent situation ... ) It was not until this afternoon that I received a telegram from General MacArthur and, desirous of informing our fellow countrymen (of the important words contained in the telegram), I am breaking my silence and passing you the glad tidings."
• "MacArthur's telegram reads: '(have profound faith. Important operations are under way. Sufficient aid is on its way),' signed MacArthur."
• "(Also, according to urgent information which has come to hand), aid to our country is arriving in the form of an air force and navy (but there is a condition: that these forces should be used only for defense south of the 38th Parallel)."
• "This afternoon there will arrive (fighter bombers) which will rout the enemy forces and light bombers to destroy enemy tanks. Also, General Church is to leave Tokyo immediately for Seoul to act as an advisor to our national defense, while (a number of high-ranking staff officers (will also arrive, and munitions supplies are on their way now, which will be followed by more.)"
• "(Under the present circumstances it is understandable that the people are seeking refuge). Countries more powerful than us are going under Communist influence; and some already have gone under) (... we can check the onslaught of the Communist forces ....)"
• "In order to surmount our dangers, our armed forces must fight vigorously (until aid arrives ... )."
• "Here (I would like to express my gratitude to our armed forces and police all along the 38th Parallel from the Ongjin peninsula and in the west to the eastern seaboard and along the eastern coast, who in the west to the eastern seaboard and along the eastern coast, who are fighting vigorously against the enemies. Particularly, I thank the armed forces in the Uijongbu area who have been fighting valiantly without any considerable arms. ... )"
• "(Only by demonstrating our courage, valor and determination in our fight against the enemy to the world family of nations can we expect aid from them and attain unification for South and North Korea. ... meanwhile, I trust that all the citizens will carry on their tasks calmly while making war efforts, displaying their courage and patriotism ... )"
• "(Remainder of the speech concerning war efforts and attempts to convert Communists was unintelligible--Ed.)"
이전에 추출된 영어 문장들의 한글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 "... 과거 대여섯 차례에 걸쳐 제가 계속해서 자랑스럽게 말해왔던 것은 미국으로부터 군사 원조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오고 있다고 믿고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는 시간이 걸리고 상당한 기간 동안 저는 침묵을 지켜왔습니다. 제가 말한 것이 헛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 "이제 우리 적들은 비행기, 탱크, 전함을 포함한 중무기를 사용하여 모든 방향에서 우리를 압박해오고 있습니다. 역경 속에서도 우리 국군과 경찰은 모든 방향에서 (성공적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 "(어제) 의정부 지역에서는 수십 대의 탱크를 포함한 중무기 (엄호 아래) 적군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처음에 우리 군대는 준비되지 않아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지만, 나중에 지뢰를 매설하여 탱크를 파괴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적군은 탱크를 멈추고 내려서 지뢰를 제거한 후 이전처럼 밀고 들어왔습니다. 우리 군대는 지뢰를 제거하는 적군을 소총으로 사격하여 저지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적군은 장거리 소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 병사들은 그런 무기가 없었습니다."
• "따라서 적군과 무기로 맞서는 것이 어려웠지만, 우리 병사들은 맨손으로도 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군은 (계속 진격하여) 서울 외곽에서 불과 수십 리 (한 한국 리는 약 400미터—편집자 주) 떨어진 지점까지 도달했습니다."
• "상황을 보고 저는 밤과 이른 새벽에 워싱턴과 도쿄에 전보와 전화로 연락하여 맥아더 장군과 트루먼 대통령 (워싱턴 주재 우리 대사를 통해)과 통화했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적이 우리 문을 두드리고 있을 때, 우리 전우들은 태연히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 "우리에게 무기를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미국, 일본, 한국에 있는 미국인 친구들과 함께 국경 방어를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트루먼에게 (유감스럽게도) 미국 의회를 통과하고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1천만 달러의 원조가 우리가 이런 비상사태에 직면했을 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호소했습니다."
• "한편, 무치오 대사는 (긴급 상황에 대해 워싱턴과 도쿄에 간청했습니다...) 오늘 오후에야 맥아더 장군으로부터 전보를 받았고, (전보에 담긴 중요한 내용을) 우리 동포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침묵을 깨고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 "맥아더의 전보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깊은 믿음을 가집니다. 중요한 작전이 진행 중입니다. 충분한 원조가 오고 있습니다),' 맥아더 서명."
• "(또한, 입수된 긴급 정보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대한 원조는 공군과 해군 형태로 도착하고 있습니다 (단, 이 병력은 38선 이남 방어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 "오늘 오후에 적군을 격퇴할 (전투 폭격기)와 적 탱크를 파괴할 경폭격기가 도착할 것입니다. 또한, 처치 장군은 우리 국방 고문 역할을 하기 위해 도쿄에서 서울로 즉시 출발할 것이며, (다수의 고위 참모 장교들도 도착할 것이고, 군수품 보급품이 지금 오고 있으며, 더 많은 것이 뒤따를 것입니다)."
• "(현재 상황에서 국민들이 피난을 가는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우리보다 더 강력한 나라들도 공산주의의 영향 아래 들어가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들어갔습니다) (... 우리는 공산군 공격을 막을 수 있습니다 ....)."
• "우리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 국군은 (원조가 도착할 때까지...) 강력하게 싸워야 합니다."
• "여기 (옹진 반도에서 서쪽으로 동해안까지 38선 전체를 따라 적과 강력하게 싸우고 있는 우리 국군과 경찰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특히, 의정부 지역에서 상당한 무기 없이 용감하게 싸워온 국군에게 감사합니다 ...)."
• "(전 세계 국가들에게 적과의 싸움에서 우리의 용기, 용맹, 결단력을 보여줌으로써만 그들로부터 원조를 기대하고 남북한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한편, 저는 모든 시민이 전쟁 노력을 하면서 차분하게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용기와 애국심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 "(전쟁 노력과 공산주의자 전환 시도에 관한 연설의 나머지 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편집자 주)."
https://archives.kbs.co.kr/download/kbs-archives_deposition.pdf
https://www.youtube.com/watch?v=MUbyGBNnMWc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20240710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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