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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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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ll first of all, tell me: Is there some society you know that doesn’t run on greed? You think Russia doesn’t run on greed? You think China doesn’t run on greed? What is greed? Of course, none of us are greedy, it’s only the other fellow who’s greedy. The world runs on individuals pursuing their separate interests. The great achievements of civilization have not come from government bureaus. Einstein didn’t construct his theory under order from a bureaucrat. Henry Ford didn’t revolutionize the automobile industry that way. In the only cases in which the masses have escaped from the kind of grinding poverty you’re talking about, the only cases in recorded history, are where they have had capitalism and largely free trade. If you want to know where the masses are worse off, worst off, it’s exactly in the kinds of societies that depart from that. So that the record of history is absolutely crystal clear, that there is no alternative way so far discovered of improving the lot of the ordinary people that can hold a candle to the productive activities that are unleashed by the free-enterprise system.”
― Milton Friedman
"글쎄요, 우선 말해 보세요. 탐욕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 사회가 당신이 아는 곳 있나요? 러시아가 탐욕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중국이 탐욕에 의해 운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세요? 탐욕이란 무엇인가요? 물론 우리 중 누구도 탐욕스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만 탐욕스러울 뿐입니다. 세상은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에 의해 운영됩니다. 문명의 위대한 업적은 정부 기관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관료의 명령에 따라 이론을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헨리 포드는 그런 식으로 자동차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대중이 당신이 말하는 종류의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난 유일한 사례, 기록된 역사상 유일한 사례는 자본주의와 대체로 자유 무역이 있었던 경우입니다. 대중이 어디에서 더 나쁜 처지, 더 나쁜 처지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바로 그런 사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의 기록은 절대적으로 수정처럼 맑고, 자유 기업 체제에서 촉발된 생산 활동과 견줄 만한 평범한 사람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은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 밀턴 프리드먼
“In all those cases, in accordance with the theme of this book, increases in economic freedom have gone hand in hand with increases in political and civil freedom and have led to increased prosperity; competitive capitalism and freedom have been inseparable.”
― Milton Friedman, Capitalism and Freedom
“이 모든 사례에서, 이 책의 주제에 따라, 경제적 자유의 증가는 정치적, 시민적 자유의 증가와 함께 진행되었고, 번영의 증가로 이어졌습니다. 경쟁적 자본주의와 자유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As it developed in the late eighteenth and early nineteenth centuries, the intellectual movement that went under the name of liberalism emphasized freedom as the ultimate goal and the individual as the ultimate entity in the society. It supported laissez faire at home as a means of reducing the role of the state in economic affairs and thereby enlarging the role of the individual; it supported free trade abroad as a means of linking the nations of the world together peacefully and democratically. In political matters, it supported the development of representative government and of parliamentary institutions, reduction in the arbitrary power of the state, and protection of the civil freedoms of individuals.”
― Milton Friedman, Capitalism and Freedom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반에 발전한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지적 운동은 자유를 궁극적인 목표로, 개인을 사회의 궁극적인 실체로 강조했습니다. 그것은 경제 문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개인의 역할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국내에서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했습니다. 그것은 세계 국가들을 평화롭고 민주적으로 연결하는 수단으로 해외에서 자유무역을 지지했습니다. 정치적 문제에서 그것은 대표 정부와 의회 제도의 발전, 국가의 자의적 권력의 감소, 개인의 시민적 자유의 보호를 지지했습니다.”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As Hayek, Milton Friedman, and so many others pointed out, a state with power, means, and inclination to intervene so heavily in economic affairs is unlikely to stop there. In the process of all this, religion and civil society are crowded out, appreciation for their role languishes, and the groundwork is laid for more restrictions on them in the future.”
― Thomas E. Woods Jr., Back on the Road to Serfdom: The Resurgence of Statism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경제 문제에 그렇게 심하게 개입할 힘과 수단, 성향을 가진 국가는 거기서 멈출 가능성이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종교와 시민 사회는 밀려나고, 그들의 역할에 대한 감사는 약해지고, 미래에 그들에게 더 많은 제한을 가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됩니다.”
― 토머스 E. 우즈 주니어, 농노제로의 길로: 국가주의의 부활
“Around the same time that Goldwater lost his bid for the presidency, the TV evangelicals Pat Robertson and Jerry Falwell joined the libertarian, far-right wing of the Republican Party. They called for free markets and cited Hayek and Friedman to protest government bureaucrats, while also issuing daily denunciations of rock music, homosexuals, abortion, civil rights, and pornography. Hard-right evangelicals were among the most influential leaders of the new free-market movement. The Republican Party became an ideological mix of the mainline northeastern establishment, American Baptist puritanism, racism and bigotry, and a Friedmanesque and American Southwest individualist libertarianism and permissiveness—all held together by a near-religious reverence for the multinational conglomerate firm and the sanctity of capital-holding shareholders.”
― Jacob Soll, Free Market: The History of an Idea
"골드워터가 대선에서 패배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에 TV 복음주의자인 팻 로버트슨과 제리 팔웰은 공화당의 자유주의적 극우파에 합류했습니다. 그들은 자유 시장을 주장하고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인용하여 정부 관료에 항의했으며, 록 음악, 동성애자, 낙태, 시민권, 포르노에 대한 비난을 매일 내놓았습니다. 강경한 우파 복음주의자들은 새로운 자유 시장 운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공화당은 북동부 주류 기득권, 미국 침례교 청교도주의, 인종 차별과 편견, 프리드먼식과 미국 남서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관용주의의 이념적 혼합물이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국적 대기업과 자본을 소유한 주주들의 신성함에 대한 거의 종교적 경의로 하나로 뭉쳐 있었습니다."
― 제이콥 솔, 자유 시장: 아이디어의 역사
“The view has been gaining widespread acceptance that corporate officials and labor leaders have a “social responsibility” that goes beyond serving the interest of their stockholders or their members. This view shows a fundamental misconception of the character and nature of a free economy.
In such an economy, there is one and only on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to use its resources and engage in activities designed to increase its profits so long as it stays within the rules of the game, which is to say, engages in open and free competition, without deception or fraud….It is the responsibility of the rest of us to establish a framework of law such that an individual in pursuing his own interest is, to quote Adam Smith again, “led by an invisible hand to promote an end which was no part of his intention. Nor is it always the worse for the society that it was no part of it. By pursuing his own interest, he frequently promotes that of the society more effectually than when he really intends to promote it. I have never known much good done by those who affected to trade for the public good.”
Few trends could so thoroughly undermine the very foundations of our free society as the acceptance by corporate officials of a social responsibility other than to make as much money for their stockholders as possible. This is a fundamentally subversive doctrine. If businessmen do have a social responsibility other than making maximum profits for stockholders, how are they to know what it is? Can self-selected private individuals decide what the social interest is? Can they decide how great a burden they are justified in placing on themselves or their stockholders to serve that social interest? Is it tolerable that these public functions of taxation, expenditure, and control be exercised by the people who happen at the moment to be in charge of particular enterprises, chosen for those posts by strictly private groups? If businessmen are civil servants rather than the employees of their stockholders then in a democracy they will, sooner or later, be chosen by the public techniques of election and appointment.”
― Milton Friedman, Capitalism and Freedom
"기업 임원과 노동계 지도자들은 주주나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견해는 자유 경제의 특성과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를 보여줍니다.
그러한 경제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하나뿐입니다. 즉, 기업의 자원을 사용하고 게임 규칙 내에 머무르는 한 이익을 늘리기 위해 설계된 활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속임수나 사기 없이 공개적이고 자유로운 경쟁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인용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는" 법적 틀을 확립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사회에 항상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그는 실제로 그것을 촉진하려고 할 때보다 사회의 이익을 더 효과적으로 촉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대중의 이익을 위해 거래하는 척하는 사람들이 행한 좋은 일을 본 적이 없습니다."
기업 임원들이 주주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버는 것 외에 사회적 책임을 수용하는 것만큼 우리 자유 사회의 기반을 철저히 훼손할 수 있는 추세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파괴적인 교리입니다. 사업가들이 주주들을 위해 최대 이익을 창출하는 것 외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스스로 선택한 개인이 사회적 이익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그 사회적 이익을 위해 자신이나 주주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지우는 것이 정당화되는지 결정할 수 있습니까? 세금, 지출, 통제라는 이러한 공적 기능이 현재 특정 기업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엄격히 사적인 그룹에서 그 직책을 위해 선택한 사람들이 행사하는 것이 용납될 수 있습니까? 사업가가 주주들의 직원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면 민주주의에서 그들은 조만간 선거와 임명이라는 공적 기술에 의해 선택될 것입니다.”
― 밀턴 프리드먼, 자본주의와 자유
“John Stuart Mill, The sole end for which mankind are warranted, individually or collectively, in interfering with the liberty of action of any of their number, is self protection.... [T]he only purpose for which power can be rightfully exercised over any member of a civilized community, against his will, is to prevent harm to others. His own good, either physical or moral, is not a sufficient warrant.... The only part of the conduct of any one, for which he is amenable to society, is that which concerns others. In the part which merely concerns himself, his independence is, of right, absolute. Over himself, over his own body and mind, the individual is sovereign.2”
― Milton Friedman, Free to Choose: A Personal Statement
“존 스튜어트 밀, 인류가 개인이나 집단적으로 그들의 수의 자유를 방해하는 데 정당한 유일한 목적은 자기 보호입니다.... 문명 사회의 어떤 구성원에 대해 그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신체적이든 도덕적이든 자신의 이익은 충분한 보장이 아닙니다.... 사회에 순응할 수 있는 행동의 유일한 부분은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입니다. 단순히 자신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의 독립성은 당연히 절대적입니다. 자신,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 개인은 주권자입니다.2”
― 밀턴 프리드먼, 선택의 자유: 개인적 진술
“After the fall of communism, everybody in the world agreed that socialism was a failure. Everybody in the world, more or less, agreed that capitalism was a success. And every capitalist country in the world apparently deduced from that what the West needed was more socialism.”
― Milton Friedman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가 실패작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자본주의가 성공작이라는 데 다소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서구에 필요한 것이 더 많은 사회주의라는 것을 그로부터 추론한 듯합니다." ― 밀턴 프리드먼
“My friend’s dad was a teacher in the local public schools, a loyal member of the teachers’ union, and a more dedicated liberal than most: not only had he been a staunch supporter of George McGovern, but in the 1980 Democratic primary he had voted for Barbara Jordan, the black U.S. Representative from Texas. My friend, meanwhile, was in those days a high school Republican, a Reagan youth who fancied Adam Smith ties and savored the writing of William F. Buckley. The dad would listen to the son spout off about Milton Friedman and the godliness of free-market capitalism, and he would just shake his head. Someday, kid, you’ll know what a jerk you are. It was the dad, though, who was eventually converted. These days he votes for the farthest-right Republicans he can find on the ballot. The particular issue that brought him over was abortion. A devout Catholic, my friend’s dad was persuaded in the early nineties that the sanctity of the fetus outweighed all of his other concerns, and from there he gradually accepted the whole pantheon of conservative devil-figures: the elite media and the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contemptuous of our values; the la-di-da feminists; the idea that Christians are vilely persecuted—right here in the U.S. of A. It doesn’t even bother him, really, when his new hero Bill O’Reilly blasts the teachers’ union as a group that “does not love America.”
― Thomas Frank,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How Conservatives Won the Heart of America
"제 친구의 아빠는 지역 공립학교 교사였고, 교사 노조의 충성스러운 회원이었으며, 대부분 사람들보다 더 헌신적인 자유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조지 맥거번의 열렬한 지지자였을 뿐만 아니라, 1980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텍사스 출신의 흑인 미국 대표인 바바라 조던에게 투표했습니다. 한편, 제 친구는 그 당시 고등학교 공화당원이었고, 애덤 스미스와 인연을 맺고 윌리엄 F. 버클리의 글을 음미하는 레이건 청년이었습니다. 아빠는 아들이 밀턴 프리드먼과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경건함에 대해 떠드는 것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언젠가는, 꼬마야, 네가 얼마나 멍청한 놈인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결국 개종한 사람은 아빠였습니다. 요즘은 투표용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극우 공화당원에게 투표합니다. 그를 끌어들인 특정 문제는 낙태였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제 친구의 아버지는 90년대 초반에 태아의 신성함이 다른 모든 우려보다 더 중요하다고 확신했고, 그때부터 그는 점차 보수적인 악마적 인물들의 판테온 전체를 받아들였습니다. 엘리트 미디어와 미국 시민 자유 연합은 우리의 가치를 경멸했습니다. 라디다 페미니스트들, 기독교인들이 미국에서 잔인하게 박해받고 있다는 생각. 그의 새로운 영웅인 빌 오라일리가 교사 노조를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 집단이라고 비난해도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 토마스 프랭크, 캔자스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미국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
“Thomas Sowell was born in North Carolina and grew up in Harlem. He moved out from home at an early age and did not finish high school. After a few tough years … read morehe joined the Marine Corps and became a photographer in the Korean War. After leaving the service, Sowell entered Harvard University, worked a part-time job as a photographer and studied the science that would become his passion and profession: economics. Sowell received his bachelor’s degree in economics (magna cum laude) from Harvard in 1958. He went on to receive his master’s in economics from Columbia University in 1959, and a Ph.D. in economics from the University of Chicago in 1968. In the early ’60s, Sowell held jobs as an economist with the Department of Labor and AT&T. But his real interest was in teaching and scholarship. In 1965, at Cornell University, Sowell began the first of many professorships. His other teaching assignments have included Rutgers, Amherst, Brandeis and the UCLA. In addition, Sowell was project director at the Urban Institute, 1972-1974; a fellow at the 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 at Stanford University, 1976–77; and was an adjunct scholar of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1975-76. Dr. Sowell has published a large volume of writing, much of which is considered ground-breaking. His has written over 30 books and hundreds of articles and essays. His work covers a wide range of topics, Including: classic economic theory, judicial activism, social policy, ethnicity, civil rights, education, and the history of ideas to name only a few. Sowell has earned international acclaim for his unmatched reputation for academic integrity. His scholarship places him as one of the greatest thinkers of the second half of the twenty century. Thomas Sowell began contributing to newspapers in the late ’70s, and he became a nationally syndicated newspaper columnist 1984. Sowell has brought common sense economic thinking to the masses by his ability to write for the general public with a voice that get to the heart of issues in plain English. Today his columns appear in more than 150 newspapers. In 2003, Thomas Sowell received the Bradley Prize for intellectual achievement. Sowell was awarded the National Humanities Medal in 2002. In 1990, he won the prestigious Francis Boyer Award, presented by The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 Currently, Thomas Sowell is the Rose and Milton Friedman Senior Fellow on Public Policy at the Hoover Institution at Stanford University in Palo Alto, California. —Dean Kalahar”
― Dean Kalahar, The Best of Thomas Sowell
"토마스 소웰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나 할렘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몇 년 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 후... 더 읽기 그는 해병대에 입대하여 한국 전쟁에서 사진작가가 되었습니다. 군에서 전역한 후 소웰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사진작가로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열정과 직업이 될 과학인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소웰은 1958년 하버드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우등)를 받았습니다. 그는 1959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68년 시카고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60년대 초에 소웰은 노동부와 AT&T에서 경제학자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관심사는 교육과 장학금이었습니다. 1965년 코넬 대학교에서 소웰은 여러 교수직 중 첫 번째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다른 교육 과제에는 Rutgers, Amherst, Brandeis 및 UCLA가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Sowell은 1972-1974년 Urban Institute의 프로젝트 디렉터였으며, 1976-77년 Stanford University의 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에서 펠로우였으며, 1975-76년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시간강사였습니다. Sowell 박사는 많은 양의 글을 발표했으며, 그 중 대부분은 획기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는 30권 이상의 책과 수백 개의 기사와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의 작업은 고전적 경제 이론, 사법적 행동주의, 사회 정책, 민족성, 시민권, 교육 및 사상의 역사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주제를 다룹니다. Sowell은 학문적 성실성에 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성으로 국제적인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의 장학금은 그를 20세기 후반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자리 매김했습니다. 토마스 소웰은 70년대 후반에 신문에 기고하기 시작했고, 1984년에 전국적으로 보도되는 신문 칼럼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소웰은 일반 대중을 위해 평범한 영어로 문제의 핵심을 짚어내는 글을 쓰는 능력을 통해 대중에게 상식적인 경제적 사고를 제공했습니다. 오늘날 그의 칼럼은 150개 이상의 신문에 게재됩니다. 2003년에 토마스 소웰은 지적 업적에 대한 브래들리 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웰은 2002년에 국가 인문학 메달을 수상했습니다. 1990년에 그는 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에서 수여하는 권위 있는 프랜시스 보이어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토마스 소웰은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후버 연구소에서 공공 정책에 대한 로즈 앤 밀턴 프리드먼 시니어 펠로우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딘 칼라하르”
― 딘 칼라하르, 토마스 소웰 베스트
https://www.goodreads.com/author/quotes/5001.Milton_Fried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