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
  • 아래로
  • 위로
  • 0
  • 타이쿤
  • 조회 수 35

글 제목.

 

1. 주희는 군자가 아닌 위선자 이다.

 

'경원당안'은 주자학을 위학(僞學), 주희를 위군자(君子)로 낙인찍는 결정적인 배경이 된 사건을 말한다. 주희는 영종(寧) 경원 6년(1200)에 '위군자'의 오명속에 세상을 떠났다. 이는 경원 2년(1196) 12월에 빚어진 소위 '경원당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송사'는 이같이 기록해 놓았다.

 

"감찰어사 심계조가 주희를 탄핵했다. '군왕에 불경하고, 나라에 불충하고, 조정을 갖고 놀며 모욕하고, 풍기와 교육을 해치고, 사사로이 사람과 재물을 쓰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그  중 비구니 2명을 유인해 첩으로 삼았다는 내용도 있다.

 

" 이것이 '경원당안'이다.

 

이는 외척인 한택주가 주희의 친구이자 재상을 지낸 조여우 등을 제거하기 위한 꾸민 것이었다. 당시 경원당안으로 인해 '위학역당(僞學逆黨)'으로 몰린 자들은 모두 59명이나 되었다. 주희가 '위학역당' 의 괴수였다.

 

원래 주희는 영종의 스승이었다. 그는 효종 때 6번 상소를 올려 부정부패한 태주지부 당중우를 탄핵해 권력자의 미움을 받은 바 있다. 이후 영종이 즉위하자 재상 조여우가 그를 추천해 영종의 시강(侍講)을 맡게 되었다. 당시 그는 65세였다.

 

이 때 그는 대학을 강의하면서도 상소를 올려 간하거나 '극기' 등을 역설했다. 영종은 겉으로 정중하게 대했으니 속으로는 크게 꺼려했다. 마침 한택주의 사주를 받은 심계조가 주희를 탄향하고 나서자 이를 곧바로 받아들여 주희의 직위를 박탈한 것이다.

 

당시 주희는 글을 올려 '사람과 재물을 사사로이 쓰고 비구니를 첩으로 삼았다는 등의 죄목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다. '비구니 첩' 문제는 이후에도 그를 '위군자'로 공격하는 논거가 되었다. '경원당안'은 당쟁의 일환으로 빚어진 것이기는 하나 그 자신에 인정한 책임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ㅡ원전으로 읽는 후흑학(厚黑學) p.214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312119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3942108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