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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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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30
<한일병합조약 전문>
대한제국 황제와 일본국 황제는 두 나라 사이의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고려하여 상호 행복을 증진시키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하자고 하며 이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면 대한제국을 일본국에 병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을 확신하고 이에 두 나라 사이에 합병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대한제국 황제는 내각 총리 대신(內閣總理大臣) 이완용(李完用)을, 일본 황제 폐하는 통감(統監)인 자작(子爵) 사내정의(寺內正毅, 데라우치 마사타케)를 각각 그 전권 위원(全權委員)으로 임명하는 동시에 위의 전권 위원들이 공동으로 협의하여 아래에 적은 모든 조항들을 협정하게 한다.
- 대한제국 황제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함.
- 일본국 황제는 앞조항에 기재된 양여를 수락하고, 완전히 대한제국을 일본 제국에 병합하는 것을 승락함.
- 일본국 황제는 대한제국 황제, 태황제 폐하, 황태자 전하와 그들의 황후, 황비 및 후손들로 하여금 각기 지위를 응하여 적당한 존칭, 위신과 명예를 누리게 하는 동시에 이것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세비를 공급함을 약속함.
- 일본국 황제는 앞 조항 이외에 한국황족 및 후손에 대해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누리게 하고, 또 이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자금을 공여함을 약속함.
- 일본국 황제는 공로가 있는 대한제국인으로서 특별히 표창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대하여 영예 작위를 주는 동시에 은금(恩金)을 줌.
- 일본국 정부는 앞에 기록된 병합의 결과로 완전히 대한제국의 시정을 위임하여 해당 지역에 시행할 법규를 준수하는 대한제국인의 신체 및 재산에 대하여 전적인 보호를 제공하고 또 그 복리의 증진을 도모함.
- 일본국 정부는 성의충실히 새 제도를 존중하는 한국인으로 적당한 자금이 있는 자를 사정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한국에 있는 제국 관리에 등용함.
본 조약은 대한제국 황제와 일본 황제의 재가를 받은 것이므로 공포일로부터 이를 시행함.
위 증거로 삼아 양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기명 조인함.
융희 4년 8월 2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
메이지 43년 8월 22일 통감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9D%BC%EB%B3%91%ED%95%A9%EC%A1%B0%EC%95%BD
<일제 강점기가 아니고 일제 헌납기다>
순종실록 4권, 순종 3년 8월 29일 양력 2번째기사 1910년 대한 융희(隆熙) 4년 일본국 황제에게 한국 통치권을 양도하다
황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짐(朕)이 부덕(否德)으로 간대(艱大)한 업을 이어받아 임어(臨御)한 이후 오늘에 이르도록 정령을 유신(維新)하는 것에 관하여 누차 도모하고 갖추어 시험하여 힘씀이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로되, 원래 허약한 것이 쌓여서 고질이 되고 피폐가 극도에 이르러 시일 간에 만회할 시책을 행할 가망이 없으니 한밤중에 우려함에 선후책(善後策)이 망연하다. 이를 맡아서 지리(支離)함이 더욱 심해지면 끝내는 저절로 수습할 수 없는 데 이를 것이니 차라리 대임(大任)을 남에게 맡겨서 완전하게 할 방법과 혁신할 공효(功效)를 얻게 함만 못하다. 그러므로 짐이 이에 결연히 내성(內省)하고 확연히 스스로 결단을 내려 이에 한국의 통치권을 종전부터 친근하게 믿고 의지하던 이웃 나라 대일본 황제 폐하에게 양여하여 밖으로 동양의 평화를 공고히 하고 안으로 팔역(八域)의 민생을 보전하게 하니 그대들 대소 신민들은 국세(國勢)와 시의(時宜)를 깊이 살펴서 번거롭게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각각 그 직업에 안주하여 일본 제국의 문명한 새 정치에 복종하여 행복을 함께 받으라.
짐의 오늘의 이 조치는 그대들 민중을 잊음이 아니라 참으로 그대들 민중을 구원하려고 하는 지극한 뜻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들 신민들은 짐의 이 뜻을 능히 헤아리라." 하였다.
【순종 문온 무녕 돈인 성경 효황제 실록(純宗文溫武寧敦仁誠敬孝皇帝實錄) 제4권 끝】
皇帝若曰: "朕이 否德으로 艱大 業을 承야 臨御以後로 今日에 至도록 維新政令에 關야 亟圖고 備試야 用力이 未嘗不至로 由來로 積弱이 成痼고 疲弊가 極處에 到야 時日間에 挽回 施措無望니 中夜憂慮에 善後 策이 茫然지라。 此를 任야 支離益甚면 終局에 收拾을 不得기에 自底진 則無寧히 大任을 人에게 托야 完全 方法과 革新 功效 奏케만 不如 故로, 朕이 於是에 瞿然히 內省고 廓然히 自斷야 玆에 韓國의 統治權을 從前으로 親信依仰든 隣國大日本皇帝陛下게 讓與야 外으로 東洋의 平和를 鞏固케고 內으로 八域民生을 保全케노니, 惟爾大小臣民은 國勢와 時宜를 深察야 勿爲煩擾고 各安其業야 日本帝國文明新政을 服從야 幸福을 共受라。 朕의 今日此擧 爾有衆을 忘이아니라 爾有衆을 救活쟈 至意에 亶出이니 爾臣民等은 朕의 此意를 克體라。"
【純宗皇帝實錄卷之四終】
https://sillok.history.go.kr/popup/viewer.do?id=kzb_10308029_002&type=view&reSearchWords=&reSearchWords_ime=
2024.09.09
1910년부터 조선인은 미국으로의 이민 및 인구 통계에서 '일본인'으로 집계되었다. 소지자의 '국적'은 일본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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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초롬
3일 ·
(국적 논란 종결 짤. 페친 김성회 님 타임라인에서 보고 흥미가 생겨 추가로 찾아봄.)
1937년 1월 8일에 조선인 김성낙 씨 가족에게 발급되었던 미국 이민증Green Card. 태어난 곳Country of Birth은 조선Chosen이지만, 국적Nationality은 일본Japanese으로 명시되어 있다. 아래는 이 사진을 소개한 사이트에서 사진 하단에 덧붙인 국적에 대한 설명이다.
국적
1910년부터 한국 국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인은 미국으로의 이민 및 인구 통계에서 '일본인'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소지자의 '국적'은 일본인입니다.
출처:19세기 중반 일본의 저작물들을 게제, 출판하는 Yosha Bunko 출판사 웹사이트
http://www.yoshabunko.com/empires/Detritus_passports.html?fbclid=IwY2xjawFLhaBleHRuA2FlbQIxMAABHclWzFVB4Zp4RYFBgPN4TKn5ONB7a8nhlm0XBOXTsyBeWrs_FKkYfuDhzQ_aem__F3GcMlWUmiI83CO9NYoIw